여름/책

[감상] 알베르 카뮈, 이방인

전병주 변호사 2013. 8. 16. 17:11

이방인

알베르 카뮈

문학마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살아간다. 어떤 의미 있는 일에 열정적으로 종사하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어제가 있었기 때문에 오늘을 산다. 자신의 의지대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은 세상이 그에게 그런 착각을 만들었을 뿐이다. 사람들은 수동적이고 감정의 변화로 상황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의 변화에 따라 감정을 바꾼다.

 

  뫼르소 또한 남들처럼 회사를 다니고 양로원에 계시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무감정하게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가 장례식이 끝났을 때 느낀 것은 지독한 피로감에 '이제야 잘 수 있겠구나.'라는 것이었다. 그는 그후에도 항상 그래왔듯이 회사를 다니고 마리를 만난다.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냐고 물을 때 '사랑해야 하는 거라면'이라는 식이고 결혼하자는 말에는 '필요하다면'이라는 식으로 대답한다. 그의 삶은 일종의 정물화와 같다. 1인칭인데 무감정한 서술. 마치 아무런 관심이 없는 타인의 이야기를 보면서 행동을 묘사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던 뫼르소는 레이몽이라는 열정적인 사람을 만나 그가 한 여자에게 복수하려는 이야기를 들어주며 친구가 된다. 레이몽은 복수를 했지만 대신 아라비아 인들에게 감시 당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레이몽 친구의 별장에 놀러가서 그들은 아라비아 인들과 맞닥뜨린다. 가벼운 싸움으로 일이 마무리 되나 싶었지만 뫼르소는 한낮의 태양에 긴장하고 아라비아 인을 격살한다. 주변의 상황에 의해 수동적으로 살던 뫼르소는, 태양열에 긴장해 방아쇠를 당긴다. 그는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강렬한 태양, 흐르는 땀, 아라비아 인들이 자신에게 겨누고 있던 칼 등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잘못을 한 건지, 아닌 지도 모른다. 그는 평소처럼 했기 때문이다.

 

  수감되고 재판을 받는 동안 그는 조금씩 상황을 인정하고 정서적인 변화를 겪는다. 그는 자신이 그저 수동적으로 행동한 것이 그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켰다는 것에 놀라지만 곧 그 상황에 화를 낸다. 그는 자신이 무감가하게 지나쳐온 새벽 공기, 셀레스티 식당, 마리 등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그것들을 사랑했다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과 관련없는 것을 엮어 자신의 살인이 계획적이었다고 주장하는 재판장에 반감을 느낀다. 또, 신의 율법을 외우고 자각조차 못한 채 신을 믿으라고 하는 신부에게 분노한다. 책의 끝에서 이미 뫼르소는 더 이상 수동적인 인간이 아니며, 자신을 둘러싼 상황에 분노하고 아무런 의심없이 하느님의 가르침을 믿는 신부를 공격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사형 집행일에 수많은 구경꾼들이 와서 자신을 둘러싸고 증오의 함성을 들려주길 바란다. 다른 사람들과 세상에 반감을 가진 그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러나 전술했듯이 사람들은 그저 습관적으로 살아가는데 익숙하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가 삶의 의미를 찾으려는 행동은 자연스럽게 세상에 대한 반항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우리는 무의미한 세상에서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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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보니 노벨문학상 수상작.

  한 때 군대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작만 골라서 읽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저 권력과 인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라고 했지만-

  어느 정도는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은 세상에 대한 인간의 고민이 어우러져 있고 동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인간의 본연적인 고민을 서술한 것들이 많았다.

  삶을 오래 살고 고민을 많이 할수록 더 깊게 다가오는 것, 그것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작들의 공통점이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