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책

[감상]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전병주 변호사 2013. 9. 15. 22:09

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열린책들

 

나의 생각을 뛰어넘는 것을 내가 설명할 수 없다. 방대한 지식은 정리를 할 수 있지만 심오한 지식은 정리를 할 수 없다. 지식은 깊을수록 그것을 얻는 자에게 이득이 되지만 그것을 소화할 수 없는 사람에게는 부담이 될 뿐이다.

 

  처음에는 이 소설이 현학적이고 아는 척하는 글이라고 생각했다. 늘상 나오는 투의 표현과 문장들로 가득 차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인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책이겉으로만 핥고 끝나는 소설이 아니라 그보다 훨씬 깊은 내용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차츰차츰 책에 빠져들었고 어느새 다 읽었지만 그 소감을 쓰기란 너무 어렵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저 싸구려 표현으로 치부될 뻔한 많은 말이 조르바의 방대한 경험과 그가 겪고 있는 상황과 함께 우리의 가슴에 울림을 준다. "새끼손가락이 없는 이유는 질그릇을 만드는데 걸리적 거리기 때문이에요.", "당신의 책에 불을 질러버려야 그나마 인간이 될 것 같군요." 등은 그저 자극적이고 일회성 감동을 주기 위한 멘트로 유명을 달리할 수도 있었지만 조르바의 경험과 함께 무게를 지니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카잔차키스는 책을 읽으며 지식을 쌓는 주인공과 수많은 것을 경험하며 세상을 알아가는 조르바를 등장시켜서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 지를 말한다. 카자찬키스는 둘의 대비를 통해 조금이라도 더 실체에 다가가고 행복해지려는 인간을 그려낸다. 책이라는 것은 타인의 손에 걸러진 간접적인 경험들을 담고 있다. 독서가는 한곳에서도 전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지만 직접적인 감상은 얻을 수 없다. 카잔차키스는 주인공의 입을 벌려 그것이 "그림자를 쫓는 것과 같다."라고 한다. 실체를 직접 보는 것이 아니고 그 묘사를 보는, 마치 정물화를 보는 것과 같다. 반면에 몸으로 겪는 것은 실체를 이해하는 기본이 된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보고 싶은 것을 보는 것은 대상에 대한 논리와 감정을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위력적인 방법이다.

 

  독서가인 주인공은 독립군에 참전한 친구를 따라 자신도 책으로 세상을 보는 일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길을 나서서도 도덕과 자신의 지식에 매여 조르바에게 핀잔을 듣는다. 마을에 머물 때는 과부의 집을 찾는 조르바는 금욕으로 실체를 이해하려는 주인공을 이해하지 못한다. 둘의 차이는 "끊고 싶은 음식이 있으면 그것을 토할 때까지 먹는다."는 조르바의 말에서 극명하게 대비된다. 시작을 안하는 주인공과 끝까지 가서 일을 마치는 조르바의 대비는 결국 조르바의 승리로 끝난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세계를 찬미하는 글을 읽으며 세계의 아름다움을 이해했다고 생각하던 주인공은 과부와 자면서 그 세계에 직접 부딪히기 시작하고 세계를 조금씩 알아나간다.

 

  카잔차키스는 감정에 충실하고 전세계를 돌아다녔으며 허례허식을 깨버리는 조르바라는 캐릭터를 통해 인간을 드러낸다. 조르바의 돌진 앞에 주인공은 무너지고 결국 조르바의 길을 따르게 된다.

 

  그러나 조르바가 자기 멋대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 또한 그렇게 살며 많은 고비를 넘겼다. 그의 몸은 그가 살아온 나날의 사나움을 드러내는 상처들로 가득하다. 그는 자유롭게 살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은 자신이 져야 한다는 것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던 것이며 그의 자유를 감당할 수 있던 것이다.

 

  나는 이렇게 살 수 없다. 내가 조르바처럼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자유를 느끼기 위해서는 버릴 것이 너무 많다. 나는 그것들을 버릴 수 없다. 하지만 지금보다 감정에 충실하고 책임감을 가지는 것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체에 다가가고 완전히 자기 실현을 이룰 수 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 또한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오래 공부를 하고 싶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고 있는 것이 아닐까?

 

  골방에 틀어박혀 책을 읽는 것이 완성되는 길이라고 할 수 없다. 그것은 학자가 공부를 하는 것과는 다르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것을 모두 느끼고 겪을 수 있는 것을 모두 겪을 때 사람은 영혼의 성숙을 향해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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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로 다니면서도 읽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