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무라카미 하루키
혼자 사는 사람이 있다. '이기적인 사람'이 아니라 홀로 사색하고(사색하게 되고) 또래에 비해 조숙한(그러나 성숙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 조숙한 세계관 때문에 주변 사람과 핀트를 맞추지 못하고 혼자서 성장하게 된다. 가끔 꿈꾸는 듯한 눈빛을 가지고 주변에 고독한 분위기가 도는 그런 사람이다. 알고 지내는 사람의 수가 극히 제한적이지만 알고 지내는 사람들과는 일생을 함께 하는 그런 사람. 그러나 그런 사람은 혼자 성장하는 것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회에 휩쓸리는 순간 부서져 버린다. 어린 시절 사회와 부딪히며 고통과 함께 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회에 나갈 때 그동안 겪지 않은 '통과 의례'적인 고통을 모두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가사와, 기즈키, 그리고 나오코는 이러한 범주에 포함된다.
나가사와의 경우에는 멍청이들이 가득한 사회를 그 특유의 시스템적인 사고로 적응한 것은 물론이고 그 사회를 짓밟고 올라선다. 그는 타인보다 월등한 신체적, 정신적 조건을 가지고 일정한 목표를 설정하며 최선의 노력을 목표를 이루고 그 다음 목표를 세운다. 그의 인생관에서 인간적인 것은 노력밖에 없다. 아무런 이상 없이 세계를 자신의 능력을 테스트해볼 장소로 여기고 기계적으로 목표를 세우고 인간적인 노력을 통해 연속적으로 목표를 쇄신한다. 나가사와를 볼 때는 인간성이란 기계적인 삶을 유지시키는 기름칠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나의 목표를 성취했을 때 성취감을 느끼기 보다는 허무함을 느끼고 그것을 희석시키기 위해 또다른 목표를 세운다. 아마 '시스템 네임 나가사와'에서 유일하게 인간성을 느낄 수 있는 말은 '나는 나대로 무척 노력하고 있어. 너보다 백배는 더 노력하고 있을 거야.'뿐일 것이다. 하지만 시스템 네임 나가사와의 상승은 사회에 적응한 일원의 성공이라기보다는 사회와 동떨어진 한 인간의 구조적 내용이라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나오코의 경우에는 그녀의 반쪽이었던 기즈키가 죽고 스무 살이 지나며 자신이 건너서야 할 '동굴'을 통과하지 못해 죽어버렸다. 그녀는 격리 요양원에서 조금씩 치료를 하며 사회에 나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지만 '나'의 미도리에 대한 사랑, 사회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비극적 상황을 통해 자살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들을 통해 인간이 살아가며 거쳐야 하는 성장의 단계를 그린다. 죽음을 겪은 뒤 죽음이 삶과 함께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 그리고 최종적으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나오코를 기다린다고 했지만 이미 미도리라는 '현실에 살아있는 여자'를 사랑했다. 그의 선택이 미도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나오코는 죽었다. 나오코가 살아있을 수 있었더라도, '나'는 미도리를 선택했을 것이다. 나오코의 죽음으로 '나'가 미도리를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니라 '나'가 미도리를 선택했기 때문에 나오코가 죽었다는 것이, 소설에서 느껴야 할 중요한 포인트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가볍게 '책임'이라고 부른다.
성장한 자는 개인과 개인, 자신의 자아, 그리고 사회에 나서야 한다. 그 무게를 느끼고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미루는 것은 문제를 더 복잡하게 엮을 뿐이다. 상처를 입는다면 입으면 된다. 줘야 할 상처는 주면 된다. 하지만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옮길 때에는 과거의 상처, 기억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발을 내딛을 줄 알아야 한다.
과거의 기억에 연연하다가 지금 만나는 사람이나 현실에 상처를 입힐 수도 있다. '나'의 아픔은 미도리라는 현실의 인물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만약 '나'가 이 이상으로 미도리를 아프게 하였다면, 아마 '나'는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한 것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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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군대에서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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